게으를 수 있는 권리

     

    10년차 잘 다니던 외국계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.

    "퇴사하려니 시원섭섭하지~?" 라는 상무님의 물음에, "시원한데 섭섭하진 않아요" 라고 말하고 말았다.

    정말 그랬다.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과 해방감이 동시에 들었다.

    회사에 원수를 지거나, 업무에 불만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.

    내 시간과 청춘을 갑갑한 콘크리트 속에서 오롯이 쓰고있더라..

    '나'를 두고 보았을 때, 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.

    쳇바퀴처럼 똑같은 삶에 회의감이 들었다.

     

     

    회사를 그만 두고,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게을러보기로 했다.

    코가 삐뚤어지도록 늦잠을 자고,

    넷플릭스에 있는 영화는 다 보겠다는 심정으로 공격하듯 리모콘 재생을 눌렀다.

    수면 시간은 차고 넘쳤다. 가끔 너무 많이 잔 어느 날은 머리가 멍해져 기분나쁠 때도 있었다.

    대부분 회사를 가지 않는다 사실 그 자체로 짜릿하고 재밌었다.

     

    하지만 일주일을 채 가지 못했다.

    마음 한 켠에는 불안함이 싹트고 있었다.

    매달 월급이 들어오다가 안들어오니, 매일 마시던 커피값도 아쉽고 아까워지기 시작했다.

     

     

    '나 이렇게 한가해도 되는건가?'

    '매일 바쁘게 살다가 막상 놀라고 풀어주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'

    '뭔가 생산적인 걸 하긴 해야하는데 하루가 너무 무가치하게 지나가는 거 같아'

    '이러다가 거지되는거 아니야?'

     

     

   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,

    시간을 흘러보내는것에대한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.

   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은 결이 같았다.

    퇴사 후 게으르게 지내보자는 다짐은 그렇게 일주일을 불태우고 사라졌다.

     

    누군가에게 '게으르다'라고 하는 것은, 단순하게 힘이없거나 에너지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.

    그 단어에는 도덕적인 비판과 비난이 담긴 뜻이 담기기도 한다.

    우리 부디, '게으를 수 있는 권리'가 있음을 다시 생각해보자.

     

    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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